뉴질랜드 '새벽 습격(Dawn Raids)': 태평양 섬 국가 이민자 표적 추방의 어두운 역사
서론: 국가가 허락한 인종 차별의 상처
1970년대 뉴질랜드 정부는 이민법을 명분으로 태평양 섬 국가 출신 이민자들을 집중 단속한 **‘새벽 습격(Dawn Raids)’**을 실행했다. 이는 경찰과 이민국 직원들이 새벽녘에 태평양계 가정을 급습해 체류 허가증을 요구하고, 미제출 시 강제 추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이 조치는 경제 위기를 배경으로 한 **인종 차별적 정책**으로 평가받으며, 40년이 넘은 오늘까지도 뉴질랜드 사회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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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사적 배경: 노동력 수요에서 차별 정책으로의 전환**
1950~60년대 뉴질랜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기에 접어들며 제조업과 농업 분야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사모아·통가·피지 등 태평양 섬 국가에서 대규모 이민자를 유입했다. 1971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태평양계 인구는 4만 명을 넘었으나, 1973년 석유 파동과 영국의 유럽 경제 공동체 가입으로 경제가 침체되자 이들은 **‘경제 부담’**으로 낙인찍혔다.
정부는 1964년 이민법을 개정해 체류 기간이 만료된 이민자(overstayer)를 추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1974년 노동당 정부는 주로 통가인 가정을 대상으로 첫 대규모 단속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개를 동반한 채 새벽에 가정을 급습하며 가족들을 끌어냈고, 교회 예배 중이던 이민자들까지 체포하는 등 **폭력적 방식**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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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인종 차별의 실체: 백인 이민자 vs. 태평양계 이민자**
통계적으로 당시 체류 기간 위반자의 3분의 1은 영국·미국 출신 백인이었으나, 이들은 전체 추방자의 5%에 불과했다. 반면 태평양계는 체류 위반자의 33%를 차지했지만 전체 추방자의 **86%**가 이들이었다. 이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백인 이민자에 대한 단속을 소극적으로 진행한 결과로, **‘인종적 편견’**이 법 집행에 반영된 명백한 사례다.
당시 언론은 태평양계를 **‘일자리를 빼앗는 범죄자’**로 묘사하며 공포를 조성했고, 정치권은 1975년 총선에서 **‘이민자 통제’**를 공약으로 내세워 표를 얻으려 했다. 한 국가당 선거 광고에는 태평양계가 위협적으로 묘사된 카툰이 등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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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폴리네시안 팬서스(Polynesian Panthers)의 저항**
이러한 차별에 맞서 1971년 설립된 **폴리네시안 팬서스**는 인권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피그 패트롤(PIG Patrol)’을 조직해 경찰의 불법 단속을 감시하고, 무료 법률 상담을 제공하며 **‘Panther’s Rapp’** 신문을 발행해 정부의 위선을 고발했다. 1976년에는 오클랜드 시내에서 **1,000명 이상의 시위대**가 경찰의 무차별 체포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교회와 시민 단체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고, 결국 1976년 4월 이민부 장관이 12주간의 **‘추방 유예 기간’**을 선언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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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1년 정부 사과: 치유의 시작인가, 상징적 제스처인가?**
2021년 8월, 자신다 아던 총리는 오클랜드 타운홀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서 **“과거 정부의 차별적 이민법 집행을 사죄한다”**며 태평양계 커뮤니티에 사과했다. 사과식에는 사모아의 전통 화해 의례인 **이포가(ifoga)**도 진행됐는데, 이는 가해자가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다.
그러나 이 사과는 **‘과거사 청산’**을 넘어 현실적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2023년 4월에는 통가인 건설 노동자가 새벽 6시에 자녀들 앞에서 강제 추방되는 사례가 발생했고, 2015~2023년 동안 95건의 새벽 습격이 기록되며 여전히 **법적 근거**가 남아 있음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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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유산과 반성: 치유를 위한 과제**
뉴질랜드 문화유산부(Manatū Taonga)는 2021년 사과 이후 **‘테우 레 바(Teu le Vā)’** 기금을 설립해 피해자들의 경험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구술사, 예술 작품, 교육 자료 제작 등을 포함하며, 특히 청소년 대상 소설 **『Dawn Raid』**(2018)는 당시 상황을 생생히 전달하는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상 체계 마련’**과 **‘이민법 개정’**을 강조한다. 2024년 현재도 이민법 제286조는 이민국 직원이 주거지에 대한 **‘합리적 시간’** 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어, 새벽 습격의 법적 토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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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기억과 공정성의 싸움**
새벽 습격은 뉴질랜드가 **‘다문화 국가’**라는 자아정체성과 첨예하게 충돌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최근 정부는 화해를 위해 교육·예술 분야에 자원을 투자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트라우마와 사회 구조적 인종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문제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차별적 법률의 철폐와 공정한 이민 정책 수립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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